세계는 지금 유례없는 고령화 흐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인구 구조가 급속히 고령화되면서 단순한 복지 정책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국가들이 고령자의 사회참여 확대와 경제활동 유지에 주목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고령자 일자리 창출 정책’이 있습니다.
고령자 고용은 단순한 생계 지원의 차원을 넘어, 건강 유지, 사회적 고립 방지, 생산성 향상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책 의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과 독일은 각각의 제도적 환경과 경제 구조에 맞춘 다양한 고령자 고용 정책을 추진해 왔으며, 이들의 경험은 고령화 속도가 빠른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먼저 일본의 고령자 재고용 제도와 그 구조적 특징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독일의 부분 은퇴제도와 고령자 고용 유인책을 소개한 뒤, 마지막으로 이러한 사례들이 한국에 주는 정책적 함의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일본의 고령자 재고용 제도: 고용 연장의 체계화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가 심각한 국가 중 하나로,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약 29%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왔으며, 그 핵심 정책이 바로 ‘재고용 의무제도’입니다.
일본은 2006년부터 '고령자고용안정법'을 통해 60세 정년 이후에도 65세까지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이 법에 따라 모든 사업장은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 후 재고용 제도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별도의 ‘재고용 계약’을 통해 정년 퇴직자를 기존 업무 또는 유사업무에 재배치하고 있습니다. 2021년부터는 이 상한을 70세까지로 올리는 내용의 법 개정이 이루어져, 향후에는 70세 재고용이 일반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재고용은 보통 파트타임 형태로 이루어지며, 임금은 종전 대비 60~70% 수준으로 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고령자의 건강과 근로 의욕, 기업의 비용 부담을 동시에 고려한 설계라 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재고용 기업에 대해 고용조정 보조금, 고령자 고용개발 보조금 등의 형태로 재정 지원을 제공하며, 인재은행이나 지역고령자취업센터를 통해 중장년 구직자와 기업 간의 매칭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은 고령자에 특화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실버인재센터’를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버인재센터는 정년퇴직자나 일정 연령 이상 고령자에게 청소, 경비, 행정 보조 등 경력과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공공 조직으로, 회원 수는 70만 명을 넘고 있습니다. 비교적 짧은 근무 시간과 유연한 조건 덕분에 고령자들이 부담 없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은 제도적, 정책적으로 고령자의 ‘고용 연장’을 제도화하고 있으며, 일자리 형태의 다양성과 단계적 은퇴라는 관점에서 선도적인 모델을 구축해왔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재고용 시 임금 격차가 크고, 실질적인 업무 내용의 질이 낮아 고령자의 삶의 질 개선과는 거리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부분 은퇴제도와 고령자 유연근무 정책
독일은 고령자 고용 정책에서 ‘유연한 은퇴’와 ‘노동시간 조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독일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이나 한국에 비해서는 완만하지만, 경제 구조의 지속 가능성과 연금 부담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고령자의 고용 지속 정책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부분 은퇴제도(Flexirente)’입니다. 이 제도는 정년 도달 이후에도 고령자가 일정 시간만 일하면서 부분적으로 연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63세에 부분 은퇴를 신청한 근로자는 하루 4시간 근무와 부분 연금 수급을 병행할 수 있으며,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연금이 일부 보전되는 구조입니다. 이를 통해 은퇴 이후에도 일정 소득을 유지하고, 노동시장과의 연계를 완만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독일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는 동시에, 급격한 퇴직으로 인한 생산성 공백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술력과 숙련도가 높은 중장년층이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거나, 컨설팅·교육 등 간접적인 형태로 노동시장에 남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기업에도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유연근무제와 고령자 채용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일은 고령자 노동자에 대한 직무 재설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신체노동보다는 의사결정, 문서작성, 품질관리와 같은 업무를 고령자가 담당할 수 있도록 직무를 분화시키고 있으며, 일부 산업군에서는 고령자 전용 업무 시스템과 근무 환경 개선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독일 연방고용청은 고령자 맞춤형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으며, 민간 기업과 협력해 시니어 인턴십, 재직자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 중입니다.
독일의 접근은 단순히 고령자의 경제적 생계 문제를 넘어서, 이들의 경험과 능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다만, 노동조합 일부에서는 고령자 고용이 청년 고용 기회를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하며, 전체 노동시장에서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고령자 일자리 창출 정책의 과제와 한국에 주는 시사점
일본과 독일의 사례는 각각 재고용 제도와 유연 은퇴 정책이라는 상이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고령자 고용을 제도화하고 정책적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이 두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으나, 고령자 일자리 정책은 아직 분절적이고 단기 성격의 일자리 사업에 치중되어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은 공공근로 중심의 ‘노인 일자리 사업’이 존재하지만, 대부분 단기 일용직이나 보조 업무에 국한되어 있어 소득 보전이나 사회적 자아실현의 측면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일본처럼 재고용을 제도화하거나, 독일처럼 유연근무제 및 부분 은퇴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민간기업이 자발적으로 고령자 고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세제 인센티브, 고용보조금, 직무 재설계 등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직업 재교육, 디지털 역량 교육, 건강 유지 프로그램과 같은 통합적인 지원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실버인재센터나 독일의 직무 분화 전략처럼 고령자의 특성과 적성을 고려한 맞춤형 일자리 설계도 필수적입니다.
한편, 청년층과 고령층 간의 고용 경쟁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고령자 고용 확대가 청년층의 일자리 기회를 잠식하지 않도록, 고령자 고용이 ‘보완재’로 작용할 수 있는 산업군이나 직무군을 중심으로 일자리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일자리 정책은 단순히 고령자의 생계를 지원하는 수단을 넘어서,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전략적 정책입니다. 일본의 재고용 제도와 독일의 유연 은퇴제도는 그 방향성과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제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고령자 고용정책의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단기적 복지 일자리를 넘어, 경험과 역량을 살린 지속가능한 일자리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해외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고, 제도적 정비와 사회적 합의를 병행해 나가야 할 시점입니다.